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 <수리남>이 공개 사흘 만에 글로벌 순위 6위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글로벌 순위에서 한국드라마를 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수리남>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인 "범죄인인도" 에 관해 포스팅을 할까합니다.
'전요환'(황정민 분)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나라, 수리남으로 가게 된 이유, 국정원 직원 최창호가 어떻게든 전요환이 수리남 외 지역에서 마약을 운반하도록 유인하려 했던 이유는 모두 '범죄인인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1 . 전요환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수리남으로 도피하였다면 '경찰이 가서 그냥 잡아오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속인주의 원칙상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대한민국 법률로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외국에 있는 범죄인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범죄인인도)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영토안에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지, 외국에서는 함부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체포를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 경찰이 한국에 들어와서 일본 범죄자들을 마음대로 체포할 수 있다면...확장해서 이야기하면 이걸 '경술국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찰이나 군대가 다른 나라에 가서 함부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은...명백한 '주권침해'이지요.
따라서 다른 나라의 영토에서 수사나 체포를 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외교문제를 초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처벌이 필요한 범죄자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가 불가능하다면 이 또한 심각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범죄인인도조약'입니다. 범죄인인도조약은 쉽게 말해, "야, 우리나라에서 범죄 저지르고 너네 나라로 도망간 사람 있는데, 너네가 체포해서 우리한테 넘겨줘. 앞으로 너네가 부탁하면 우리도 똑같이 해줄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걸 '상호주의'라고 합니다. 심지어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상호주의'에 따라 범죄인인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상호주의'는 범죄인도조약을 체결하는 대원칙이고, 범죄인인도조약은 상호주의 원칙을 명문화 한 것입니다.
ㅁ범죄인인도법
제4조(상호주의)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에도 범죄인의 인도를 청구하는 국가가 같은 종류 또는 유사한 인도범죄에 대한 대한민국의 범죄인 인도청구에 응한다는 보증을 하는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한다.
2 . 범죄인인도는 꽤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합니다. 아래와 같이 주요한 절차만 보더라도 간단치가 않습니다.
검사, 범죄인인도청구서 작성, 대검찰청 경유 법무부장관에게 보고 → 법무부장관, 청구 여부 결정 후 외교부장관에게 송부 → 외교부장관, 피청구국 주재 한국대사관 통보 → 한국대사관, 피청구국 외교부장관에게 송부 → 피청구국 외교부장관, 자국 법무부장관에게 통보 → 피청구국 법무부장관, 자국 법집행기관(검찰, 경찰) 통해 청구대상자 검거 → 검거 후 피청구국 법원에 인도재판 신청 → 인도 결정 후 청구국에 신병 인도
<출처 : 신상철, 『외사경찰론』, 박영사(2019)>
범죄인인도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도 걸리고, 법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무려 19년만에 송환된 사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까지 하루도 안걸리는 시대에, 범죄인인도가 왜 이리도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걸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범죄인인도절차가 복잡한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각 나라의 주권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더해 결국 '인권'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범죄자가 무슨 인권이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류 문명의 역사는, 특히나 근대화 이후의 역사는 사실 범죄자 취급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죄없는 사람도 범죄자로 만들어서 정적을 제거해왔던 역사, 죄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은 죄 이상으로 과도하게 처벌해왔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라고 해야할까요. 피해자 입장에서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까다로워진 것이 더더욱 답답한 일일 수 있지만, 범죄자도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대우해야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더더욱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납득하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심문을 받지 아니하고(헌법 제12조 제1항),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체포·구속이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헌법 제12조 제3항). 그리고 형사소송법은 위 헌법 조항을 구체화하여 체포나 구속의 절차를 규정하고, 불복할 수 있는 절차도 규정해놨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중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경찰이나 검찰이 함부로 체포하거나 구속할 순 없습니다. 체포·구속을 하더라도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법에서 정한 기간안에서만 할 수 있고, 볼복의 기회도 부여해야 합니다. 또한 이런한 절차를 강제하기 위해, 체포와 구속에 관한 절차를 어긴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는 범죄자의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누가봐도 명백한 범죄자임에도 유죄를 입증할 증거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정리하자면, 자국에 있는 범죄자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켜 체포하여야 한다면, 외국에 있는 범죄자의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더더욱 복잡한 절차가 마련되어 있을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전요환이 '수리남'으로 도피한 이유, 국정원 직원 최창호와 강인구가 전요환을 꼬드겨 '수리남' 외 지역으로 마약을 운반하도록 한 이유 모두, 대한민국과 수리남 사이에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죄인인도조약이 없더라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리남 정부에 전요환을 넘겨줄 것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전요환은 수리남의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었으니 수리남 정부가 대한민국 요청을 받아줄리 만무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전요환이 대한민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된 나라와 엮이도록 했어야 했습니다(참고로 미국은 1999년, 브라질은 2002년 대한민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수리남>에서는 본 포스팅에서 다룬 공권력의 행사 가능 범위와 관련하여 법규정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으나, 이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각색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스포가 될 수 있으니 구체적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수리남>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사건에서는 대한민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된 브라질에서 체포, 한국으로 인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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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변호사 신원진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