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으로 고소되었다고 해서 신고된 신체접촉이 곧바로 유죄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심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거나 CCTV와 같은 물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혐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수사기관은 어떤 신체접촉이 있었는지, 그 행위가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추행인지,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피의자에게 강제추행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사건 전후의 정황과 함께 판단합니다.
특히 강제추행 사건은 당사자 두 사람만 있었던 장소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사건 당사자의 진술과 사건 직후의 반응, 주변인 진술, 이동 경로 등의 정황이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경찰 조사실에서 한 진술은 검찰 수사와 형사재판까지 따라가기 때문에 출석 전에 사실관계와 자료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1. 강제추행죄는 어떤 경우에 성립하는가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합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다음 세 가지가 주로 문제됩니다.
첫째, 추행 행위가 있었는지.
둘째, 있었다면 그 행위가 법률상 추행에 해당하는가.
셋째, 피의자에게 강제추행의 고의가 있었는가.
피해자의 연령이나 장애 여부, 피의자와의 관계, 행위가 이루어진 장소와 방법에 따라서는 형법상 강제추행죄가 아닌 다른 성폭력처벌법 또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조항이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말한 죄명만 보고 처벌 수위와 대응 방향을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2. 어떤 신체접촉이 '추행'에 해당하는가
대법원은 추행을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면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추행 여부는 접촉 부위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접촉한 부위, 접촉 방법과 강도, 지속시간, 행위 당시의 말과 표정, 두 사람의 관계, 장소, 피해자의 연령과 상태, 행위 전후의 대화와 행동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가슴이나 엉덩이처럼 성적인 의미가 비교적 분명한 부위만 문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허리, 허벅지, 어깨, 손을 만진 경우라도 행위의 방식과 당시 상황에 따라 추행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체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강제추행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상대방이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팔이나 허리를 붙잡은 경우와, 폐쇄된 공간에서 성적인 말을 하며 같은 부위를 반복적으로 만진 경우는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어디를 만졌는가뿐 아니라 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접촉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행위자가 성욕을 자극하거나 만족하려는 목적을 가졌는지가 강제추행 성립의 필수요건은 아닙니다. 따라서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충분한 해명이 되기 어렵습니다. 접촉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와 당시 피의자의 인식이 함께 설명되어야 합니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도5856 판결에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해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인 동기나 목적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3. 심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면 강제추행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강제추행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먼저 폭행이나 협박을 한 뒤 상대방을 추행하는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갑자기 상대방의 신체를 만지는 것처럼 추행행위 자체가 폭행으로 평가되는 이른바 기습추행입니다.
기습추행의 경우에는 별도의 선행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는 폭행 요건이 아예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추행행위 자체가 폭행에 해당하기 때문에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밀치거나 위협한 적은 없다"는 사정만으로 혐의가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접촉의 방법과 추행성, 피의자의 고의를 나누어 검토해야 합니다.
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은, 춤을 추면서 순간적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진 행위에 대하여, 추행행위 자체가 폭행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선행 폭행·협박 없이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4. 상대방의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은 어떻게 판단되는가
신체접촉에 대한 상대방의 동의가 있었다면 추행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동의 여부는 접촉 전후의 말과 행동, 두 사람의 관계, 사건 직후의 메시지와 사과·해명 내용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피해자가 즉시 항의하지 않았다는 사정이나 사건 이후에도 연락했다는 사정 하나만으로 동의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5. 피해자 진술만으로도 유죄가 될 수 있는가
객관적인 물적 증거가 없더라도 신빙성이 인정되는 피해자 진술을 중심으로 유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진술하기만 하면 곧바로 유죄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진술의 핵심 내용이 일관되는지, 구체적이고 실제 경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지, 객관적인 시간·장소·동선과 부합하는지, 사건 직후의 메시지나 행동과 모순되지 않는지, 참고인 진술이나 다른 자료가 뒷받침하는지 등을 검토합니다.
진술이 일부 달라졌다면 변경된 부분이 사건의 핵심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생길 수 있는 차이인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반드시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전제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이 제한 없이 인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피의자 입장에서는 "CCTV가 없으니 괜찮다"거나 "상대방 진술뿐이니 무혐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 진술과 대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신속하게 찾아야 합니다.
6. 경찰 출석 요구를 받았다면 먼저 해야 할 일
가장 먼저 문제 된 일시와 장소, 고소인이 주장하는 대략적인 행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인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고소 내용을 전부 알지 못한다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추측해 설명하기보다 확인된 범위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 사건 전후의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 누구와 어떤 이유로 만났는지
- 당시 장소와 좌석 배치는 어떠했는지
- 술을 얼마나 마셨고 어떻게 이동했는지
- 어떤 신체접촉이 있었는지
- 접촉 당시 서로 어떤 말을 했는지
- 사건 직후 어떻게 헤어졌는지
- 이후 어떤 메시지와 통화를 주고받았는지
이 정리는 조사에서 외울 답변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는 사실과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을 구분하고, 자신의 기억이 객관적인 자료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7. 보존해야 할 증거
다음 자료가 있다면 원본 상태로 보존해야 합니다.
- 사건 전후의 카카오톡·문자·SNS 대화
- 통화내역·녹음·사진·동영상 원본
- 카드결제·택시·교통카드·위치기록
- 출입기록과 일정표
- 당시 함께 있던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 주변 CCTV의 위치와 보존기간
CCTV는 보존기간이 짧을 수 있으므로 신속하게 보존 요청 방법을 검토해야 합니다. 불리해 보이는 메시지를 삭제하거나 휴대전화를 초기화해서는 안 됩니다. 자료의 내용뿐 아니라 삭제행위 자체가 불리한 정황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대화를 새로 만들 목적으로 상대방이나 참고인에게 특정한 답변을 요구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8. 고소인에게 바로 연락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억울하거나 상황을 확인하고 싶더라도 고소인에게 곧바로 전화하거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내가 술에 취해 실수했다", "그날 일은 미안하다", "고소만 취하해 달라"는 표현은 작성자의 의도와 달리 접촉 사실이나 고의를 인정하는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복적인 연락은 회유나 압박, 2차 가해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습니다.
이미 사과 문자를 보냈더라도 곧바로 자백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접촉과 고의를 인정한 것인지, 포괄적인 유감 표현인지 전후 대화와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합의를 위한 연락이 필요하다면 연락의 목적과 문구, 전달 방법을 먼저 검토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9. 첫 경찰 조사에서 유의할 점
첫째, 기억나지 않는 내용을 추측해서 답하지 않아야 합니다. 조사 분위기에 따라 시간을 특정하거나 상대방의 행동을 단정하면 나중에 객관적인 자료와 어긋날 수 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그렇게 답하고 확인할 자료가 있다면 확인 후 제출하겠다고 설명하는 것이 낫습니다.
둘째, 질문에 포함된 전제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거부했는데도 왜 계속 만졌습니까?"라는 질문에는 거부와 반복 접촉이 모두 전제로 들어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먼저 그 전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셋째, 상대방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을 피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평소 성격이나 사생활을 공격한다고 혐의가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건 당일의 구체적인 행위와 객관적인 자료에 집중해야 합니다.
넷째, 조사 종료 후 피의자신문조서를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자신의 답변이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기재되었거나 질문과 답변의 맥락이 빠졌다면 수정을 요청해야 합니다. 조사가 길었다는 이유로 대충 읽고 서명하면 안 됩니다.
피의자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진술거부권은 무조건 모든 답변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건의 상황에 따라 어떤 질문에 어느 범위까지 답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필요한 경우 변호인이 참여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10. 인정하는 사건과 부인하는 사건의 대응은 다르다
접촉 자체를 부인한다면 당시의 동선, CCTV, 카드내역, 메시지, 참고인 진술 등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중요합니다.
접촉은 인정하지만 추행의 고의를 부인한다면 접촉한 이유와 방법,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친근감의 표현이었다"거나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고만 진술해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혐의를 인정한다면 책임의 범위를 정확하게 정리한 뒤 피해 회복과 합의, 재범 방지 노력 및 양형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다만 조사를 빨리 끝내려는 마음으로 실제보다 넓은 사실까지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접촉이 있었는데 모두 부인하면 CCTV나 참고인 진술이 확인되는 순간 나머지 진술의 신뢰도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애매한 사과를 했다는 이유로 하지 않은 행위까지 인정해서도 안 됩니다.
11. 수사초기부터 재판을 생각해야 한다
강제추행 사건은 신고 직후부터 당사자의 기억과 메시지, CCTV 등 증거가 빠르게 사라지거나 변합니다. 경찰 조사는 단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혐의에 관한 공식적인 진술이 기록되는 절차입니다.
접촉을 인정할 것인지 부인할 것인지만 정해서 출석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문제 된 접촉이 무엇인지,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과정은 어떠했는지, 상대방 진술과 대조할 객관적인 자료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법률사무소 청율은 상담한 변호사가 경찰 조사 준비와 동행, 변호인 의견서 작성, 재판까지 동일하게 사건을 수행합니다. 사건을 선임하지 않더라도 첫 조사에서 어떤 진술을 남길지는 출석 전에 점검하시기를 권합니다.
